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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윤석열 대통령 1심 내란판결 비평 - 수사만 내란몰이가 아니라 판결도 내란몰이였다 -
작성자 :  자유대한호국단
조회 : 1328
작성일 :  2026-02-28 12:44
     
「 윤석열 대통령 1심 내란판결 비평 」
- 수사만 내란몰이가 아니라 판결도 내란몰이였다 -

(1) 판결문이 무려 1,234쪽이다. 법리적으로 중요한 알맹이는 전혀 없고 분량만 방대한 판결문이다. 내란죄는 법리적으로 ‘국헌문란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폭동’이 있어야 한다. 판결문 범죄사실(p.110)은 "국회를 무력화시킨 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출동시켜 ‘폭동’을 일으켰다"고 판시하고 있다.

(2) 그렇다면 ‘국헌문란’이란 무엇인가? 형법 제91조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으로 이뤄지는 내란죄에서 ‘국헌문란’을 「‘강압’에 의하여 헌법기관을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1997년 12.12 / 5.18 사건 판결에서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구적으로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상당기간’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당연한 판례다. 국회를 해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명목상 존치는 시켜두되, 아무일도 못하게 상당기간 ‘무력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3) 그런데 형법 제91조의 ‘강압’이란 국민저항과 사회 제 세력의 반발을 억누를 수 있는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대규모 군사력이 있어야 국회를 영구적으로 문을 닫게 하든지 상당기간 식물국회로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된다. 즉, 군부의 쿠데타든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든 국회의 해산이나 무력화는 모두 특정한 정치계획(1980년 신군부의 ‘시국수습 방안’ 내지 장기독재 구축계획)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무력에 의한 국가 장악 및 군사력 투입 계획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때 비로소 국헌 문란의 목적이 인정되는 것이다. 정치적 목표는 장기독재 구축계획, 실행 방안은 강압을 위한 대규모 군투입이다.

* 참고로 ‘친위쿠데타’(Self-coup)란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영구화(권력 독점, 장기독재)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대 등 무장 병력을 동원해 기존 헌정질서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말한다. 친위쿠데타는 i) 먼저 군경의 막강한 무력을 동원하여 국가를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국민저항, 정치권 반발, 언론의 비판, 사법의 견제와 개입을 압도하여 국회를 해산하거나 명목상 두더라도 사실상 식물국회로 무력화시킨 다음 ii) 정당해산 등 정치규제와 언론장악을 거쳐 초법적 방법으로 개헌을 실시함으로써 장기집권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공통된 특징으로 한다. 즉, 대통령이 일으키는 친위쿠데타의 핵심은 대규모 군경 투입으로 저항과 반발을 억압하는 것과 의회 해산 및 개헌 등 정치일정이 동반된 장기집권 계획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친위 쿠데타는 군부 리더들의 지지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4) 그런데 놀랍게도 내란사건 1심 판결은 반대세력을 억누르고 권력 독점과 장기독재를 목표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특검의 ‘친위쿠데타’ 주장을 배척하였다. 특검은 결심공판 논고에서 "대통령의 내란은 장기독재 권력강화를 위한 개헌을 목표로 한 친위쿠데타"라고 규정하였는데, 1심 판결은 "장기집권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고 보기에는 국회를 무력화시킨 후의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재판부 설명자료 p.14). 그렇다면 내란사건 1심 판결은 사실상 국헌문란을 부정한 무죄 판결이다.

(5) 대법원은 국헌문란 목적이 ‘상당기간’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했는데, 군경을 투입해 여의도 국회 건물을 상당기간 봉쇄하려면 압도적 무력에 의한 국가장악 계획, 즉 독재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계획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 계획에 대한 자료도 없고 흔적도 없고 증거도 없다. 대규모 군대는커녕 12. 3 24:00 고작 특전사 96명, 수방사 15명이 국회 경내에 출동해 질서유지를 수행했다. 또한 1심 판결에 의하면 윤 대통령은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를 마치기 전에는 절대 군을 출동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강조하였다고 인정하고 있다(p. 727). 국회 계엄해제 의결이 봉쇄된 것이 아니라 국회는 계엄해제 요구안을 너무나 잘 심의했고 비상계엄 선포 2시간 30분만에 가결했다. 군과 민간과의 충돌도 없었고 군의 폭행이나 억압행위도 없었으며 사상자도 전혀 없었다. 1심 판결이 설시하듯, 반대세력을 누르고 권력을 독점하려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얘기는 단순히 ‘친위쿠데타 주장 배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란이 무죄라는 뜻이다.

(6) 더 상세히 살펴보면, 2024. 12. 3. 22:37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2. 4. 00:48 국회에는 국민의힘 의원 90명은 불출석하고 190명의 국회의원이 출석하여 01:03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었다. 01:16 국회의장은 국회병력의 전원 철수를 선언했고, 02:00 전군지휘관 화상회의로 군의 계엄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04:20 국무회의를 거쳐 계엄이 해제되었다. 사상자는 전혀 없으며 누구도 체포되거나 체포시도조차 된 바 없고, 의원을 끌어내거나 끌어내려는 시도조차 없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법 제7조에 의거해 정보사 10명 등 소수가 들어갔으나 강압 행위나 압수수색 시도, 체포 시도조차 전혀 없었고 사진을 찍은 것이 전부다.

(7) 1심 판결은, 계엄사무에 투입된 특전, 수방, 방첩 사령관들도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동원되는 것에 선뜻 내켜하지 않고 있어 이들을 명령 체계로 묶어서 국회 봉쇄에 투입시키려고 계엄을 선포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즉, 대통령의 권력 강화와 독재 구축을 위한 군사행동에 대다수의 군지휘부가 지지하거나 참여하지 않을 것이 명백하므로 특검의 친위쿠데타 주장을 배척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대규모 군대 동원으로 압도적 무력을 행사하는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1심 판결은 강압에 의해 국회 권능행사를 영구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친위쿠데타’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 다만 강압에 의해 국회 권능행사를 ‘상당기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군경의 투입에 의한 여의도 국회 ‘봉쇄’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내란죄 인정의 근거는 ‘상당기간’, ‘봉쇄’라는 것이다.

(8) 지난 1년간 많은 증인들이 이 사건 법정에서 국회 ‘봉쇄’가 아니라 ‘질서유지 목적의 통제’라고 증언했다. 김현태 특전사 707 특임단장은 "국회 봉쇄가 아니라 방어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며, "방어란 적대세력으로부터의 방호이며, 국회의원들의 진입을 막으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 단장은 오히려 "부대원들은 (시위대에 의해) 질서유지를 하는 과정에서 18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1심 판결은 그 증언들을 모두 배척하고 국회가 ‘봉쇄’되었다고 한다. 이럴 거면 1년여의 재판은 왜 했으며, 증인신문은 왜 했는가.

‘상당기간’ 인정은 더 어이가 없다. 군경이 국회를 둘러싸고 봉쇄하면 언제 봉쇄를 풀지는 윤 대통령의 마음에 달린 것이고 언제 봉쇄를 풀 것인지 미리 공표된 바도 없으니 ‘상당기간’ 봉쇄를 유지하며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 한 국헌문란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시한 것이다(p. 1043).

(봉쇄도 하지 아니하였지만) 언제 봉쇄를 풀지는 윤 대통령의 마음에 달렸으니 ‘상당기간’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국헌문란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재판부는 관심법으로 윤 대통령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이 ‘상당기간’ 국회를 봉쇄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봉쇄의 과정과 결과는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그렇단다. ‘상당기간 봉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면 윤 대통령이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국회의원을 출입시키고 있다"고 보고받았을 때 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했겠는가? 궁예의 관심법이 천년의 시간을 넘어 지귀연 재판부에서 다시 살아났다.

i)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내란죄가 곧 친위쿠데타인데, 친위쿠데타는 부정하면서 내란죄는 인정하니 판결 내용 자체가 모순, 충돌된다. ii) 관심법에 의한 비현실적인 인식에 기반하고 있으니 주문은 내란 유죄이나 이유를 따져보면 결국 사실상 국헌문란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무죄 판결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9) 봉쇄하고, 장악하며, 체포·구금하고, 압수·수색하며, 의결을 저지하고 새로운 입법기구를 창설해 국회를 무력화시키려고 계엄을 선포해 군을 출동시켰다는 것인데 실제 이루어진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단전단수 시도라는 것도 실행은커녕 시도된 바도 없고 아예 문제된 기관에 병력 배치도 없어 이상민 장관의 소방청장에 대한 직권남용 부분도 무죄가 선고되었다. 1심 판결은 "다만 1회성에 그칠 계획이었다면 내란죄에서의 ‘국헌문란의 목적’에 해당하지 않고, 단순히 몇몇 의원들을 살해하거나 공격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백보를 양보한다 해도 1회적으로 의결이 방해되는데 그쳤다고 보는 것이 지극히 상식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내란죄의 국헌문란 목적은 없는 것이다. 재판부도 멋쩍은 듯 "마음먹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10) 국헌문란 목적이란 것은 헌법기관을 강압에 의해 폐지·해산·무력화 시킬 목적이 있었는지가 핵심이고, 헌법기관 무력화를 실현 가능하게 하는 여건과 계획이 있어야 인정되는 것이다. 즉, 국헌문란의 목적은 초과주관적 요소로서 ‘엄격한 증명’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국헌문란의 수단으로써 ‘상당기간 국회 무력화’ 역시 이를 추진하는 이유, 전후 일정계획, 실현 가능하게 하는 정무적, 군사적 계획이 있어야 인정되는 엄격한 증명사항이다.

이를 12. 12 / 5. 18 사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2. 12 / 5. 18 사건은 전직 대통령이 내란죄로 단죄되었으나, 내란행위 당시에는 대통령이 아니라 신군부 지도자였다. 이들은 i)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을 강압적으로 위협하여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실시하고 ii) 국가보위 비상대책 위원회를 만들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정부에 시행하도록 강압함으로써 대통령과 내각을 무력화했다. 또한 iii) 이에 저항하는 광주 시민을 난폭하게 진압하고, 언론 통폐합 조치를 통해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iv) 대학, 정부기관, 주요 도심 등 전국의 보안 목표에 계엄군을 대거 투입·진주시켰다. v) 뿐만 아니라 삼청교육대와 예비 검속을 통해 국민저항을 억압하고, 국회의사당을 폐쇄시켜 국헌문란 행위를 저지르고 이를 위해 폭동을 한 사건이다.

1980. 5. 18. 00:00을 기해 실시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는 1991. 1. 24. 해제되어 계엄 지속기간이 8개월이었다. ‘상당기간’ 이었던 것이다. 실제 국헌문란 행위가 저질러졌고 국헌문란 목적은 나중에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짐으로써 엄격한 증명에 의해 입증되었다. 이를 12. 3 비상사태 선포와 비교해보면 1심 판결의 문제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2024. 12. 3. 비상계엄은 22:37 선포되어 12. 4. 01:03 국회의 해제요구 의결이 있었고 이에 따라 새벽에 국무회의를 신속하게 소집하여 12. 4. 04:20 해제를 선언했다. 국무회의를 기다리면 시간이 지체되므로 군의 계엄 상황을 먼저 종료시킨 후 계엄 해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사상자가 전무, 체포 내지 체포시도 또한 전무하였다. 이렇게 헌법기관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계엄이 초단기에 해제된 친위쿠데타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전 세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처벌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다. 1심 판결에서 "대통령이 실제 내란(또는 반란, 역모 등 유사한 형법 규정)에 의해 처벌받은 사례는 문헌상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판시한 것처럼 말이다.

(11) 대통령의 ‘국회 무력화’라는 것은 자신의 권력 강화와 독점을 꾀하는 치밀한 실행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그냥 야당이 미워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국회 무력화를 위해서는 대규모 군병력이 필요한데, 병력 동원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맨 입으로 되는게 아닌 것이다. 대통령도 장기독재를 위한 권력 강화 의지를 보여야 하고, 그러한 차원의 계획이 수립되어 추진해야 군부와 제 세력의 지지도 얻게 되고 국회를 해산하든 상당기간 무력화시키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무력과 정치적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1심 판결은 계엄 사무에 투입된 지휘관들 조차 국회 봉쇄와 장악 같은 일에 회의적이고 우려하며 충성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고 있으니, 나머지 수많은 군 지휘관들이 과연 무력에 의한 국가 장악에 동조하겠는가? 1심 판결에 따르면 군사·정치 시나리오와 계획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군도 국회 봉쇄에 절대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으므로 국군통수권자의 내란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란이 무죄라는 것은 자명하다.

(12) 12. 3 비상계엄은 반헌법적인 ‘국회 독재’로 인해 국정마비와 헌정 붕괴가 초래되고 국가가 위기 상황이 되어 비전시계엄으로 선포된 것이다. 정부 인사에 대한 줄탄핵과 예산폭거, 입법폭거의 패악질로 정부를 마비시킨 것이 ‘국회’이며, 그 ‘국회’의 반국가행위를 척결해야 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국회’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 것이 예상되었다. 실제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에는 순식간에 4천여 명이 몰려 들어 군이 도착하기 전부터 안전사고 발생의 우려가 큰 상황이었고 오전 1시 경에는 무려 1만 6천여 명이 국회로 몰려든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들은 이미 준비된 ‘계엄 철폐’ 손팻말과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처럼 국회 경내와 주변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 것이 충분히 예상되고 폭력을 선동하는 적대세력이 있을 경우 유혈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를 혼잡한 상황 속에 질서유지를 위해 경내에는 군이, 외부에는 경찰이 투입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따라서 2024. 12. 3. 22:27 비상계엄 대국민 담화 후 비로소 군경의 출동이 시작되어 12. 3. 24:00 특전사 96명, 수방사 15명이 국회 경내에 투입되었다. 경찰은 전장연 집회 대응 기동대 300명이 국회 외곽 경비를 담당했다. 12. 3. 23:07부터 국회의원과 신분증 소지자에 대해 국회 Gate 출입 조치가 이루어졌고, 사실상 24:00경까지 진행되어 국회의원들은 권능행사를 방해받기는커녕 12. 4. 00:48 본회의장에 의원 190명이 착석하여(국힘 의원 90명은 불출석) 계엄해제 요구안을 더할 나위 없이 빠르게 잘 통과시켰다(12. 4. 01:03 가결).

이를 ‘상당기간의 국회 무력화’ 시도로 보고 내란죄가 된다는 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대통령이 국회를 정말 봉쇄하려 했다면 군경을 미리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완전 차단 봉쇄를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군 병력도 계엄 선포 전에 미리 주변에 이동시켜 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대규모 군경을 투입하지 않았는가?(김봉식 서울청장은 이 사건 법정에서 국회 전체를 봉쇄하려면 3500명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증언한바 있다) ‘상당기간 봉쇄’가 아니라 ‘질서유지 통제’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계엄선포에 따라 질서유지를 위한 소수의 군경 출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심 판결은 소수 병력(2024. 12. 3. 24:00 특전사 96명 국회 경내 도착)으로 국회의 봉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의식한 듯, 다시 관심법을 동원해 소설을 창작한다. "예산국회 시기에 국회 직원들이 늦게까지 야근하는 것을 모르고 국회가 비어 있는 줄 알고 소수 병력으로 국회 봉쇄를 시도한 것"이라는 판시다(p. 729~730). 그러나 예산국회 시기에 각 부처 공무원과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국회 주변에 사무실을 얻어놓고 국회 직원과 소통하며 늦게까지 근무한다는 것을 모르는 정부 고위인사가 있는가? 재판부는 국헌문란 논리 구성을 위해 "국회가 비어 있는 줄 알고 소수 병력을 보냈다"는 창작 소설을 쓰며, 국헌문란의 목적을 비현실적, 비상식적인 추정과 억측으로 인정하고 질서유지를 위한 정상적인 군경의 출동을 상당기간 봉쇄 시도의 폭동이라 단정했다.

(13) 윤 대통령은 예산국회 시기 평일 주중에 계엄을 선포하여 대통령과 국회가 각자의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자는 취지였으며, 실무장하지 않은 소수병력 투입은 대통령의 대표적인 당부사항이었다. 그럼에도 지귀연 재판부는 국헌문란 논리 창작을 위해 법정에서 드러난 증언들을 의도적으로 무시, 외면하였다.

1심 판결은 대통령이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에게 국회 주변 질서유지를 부탁한 사실이 인정되니 국회 ‘봉쇄’를 지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은 명백히 경찰에 봉쇄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 오히려 12. 3. 23:15 조지호 경찰청장과의 첫 통화에서 국회 주변 상황을 물었고 조 청장은 응당 23:07부터 출입조치를 보고하였다(국회의원과 신분증 소지자 출입). 윤 대통령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이 말은 봉쇄가 아니라 국회의원과 관계자는 출입시키라는 지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국회를 봉쇄하려 했다면 19:00경 삼청동 안가에서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을 만났을 때부터 경찰력을 동원하여 국회 담과 Gate를 봉쇄하라고 했어야 한다.

국방장관의 특전사에 대한 확보 지시는 신분증 소지자를 구별 출입시키라는 ‘통제’의 의미이고, 수방사는 계엄이 선포될 경우 주요 공공기관인 국회에 대한 경비방호 임무가 있어 별도 지시가 없어도 출동해 국회를 경비하는 것이지 국회를 ‘봉쇄’하는 것이 아니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선포 후 소수의 병력을 투입하도록 지시했고, 군 투입 후 국회 도착 시까지 1시간 이상 걸린다는 장관의 보고를 이미 받았는데, 어떻게 국회를 봉쇄할 수 있겠는가.

190명의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착석해 계엄해제 요구안 심의가 시작된 12. 4. 00:48 까지 국회 주변에 투입된 경찰은 11개 기동대 721명이고, 국회 경내에 투입된 군은 23:48~00:11 특전사 96명이 헬기로 순차 도착하였으며 00:24 수방사 15명이 경내 진입하여 7번 문 앞에 있다가 본관 후문으로 이동하였다. 그 외 특전사 265명이 00:30~00:46 도착하여 후문 쪽에 대기하였고, 수방사 136명이 12. 4. 00:04~00:43 국회 주변에 도착하였으나 인파 때문에 주차장이나 차량 대기 상태였다. 이들은 봉쇄는커녕 국회 관계자와 민간인을 구별, 분리하는 통제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계엄에는 소수 병력이 투입되었는바, 이런 상황에서 예산국회 시기에 국회에 들어가 있는 수천 명의 국회의원 및 국회 직원과 보좌진들을 어떻게 모두 밖으로 내보내거나 끌어내고 국회를 완전히 비우고 못 들어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국회에 대한 봉쇄를 어떻게 ‘상당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백보를 양보해 국회를 1회적으로 통제했다고 치자. 그런데 12. 3. 계엄사무에 투입된 사령관들도 무리한 일에 회의적이어서 이들을 명령체계로 묶어 일하게 하려고 계엄을 선포하였다는 1심 판시에 비추어보면 ‘상당기간’ 그들이 대통령에 충성하여 국회 봉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계엄에 투입된 소수 병력을 제외하고 나머지 수십만 국군의 지휘관들은 대통령의 국회 봉쇄를 지지하리라 보는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판결문을 읽으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14) 그래서 국군통수권자의 내란과 친위쿠데타는 전군 지휘관들의 확고한 지지와 참여 및 충성 기반 하에서만 벌일 수 있는 일이다. 즉, 대통령의 내란은 압도적 무력에 의한 국가 장악이 필수이고 그 준비와 계획이 서 있어야 국회 무력화와 헌법정지 및 개헌 등의 권력 독점 체제가 구축되는 것이다. 그것이 국회 해산이든 상당기간의 국회 봉쇄이든 마찬가지다. 판례가 말하는 ‘상당기간 국회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는 논지 역시 1980년도 신군부의 군사반란과 내란 사건에서 나온 것으로서,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한 국가 장악이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도 국회에 대한 상당기간 봉쇄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대통령이 군경을 투입하여 국회를 상당기간 봉쇄하면 거대 야당의 여소야대 상황,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환경, 정부에 적대적인 노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지지층마저도 이를 비판하고 저항할 것이며 당장 탄핵과 사법적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데, 국회를 무력화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능이나 한 시나리오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국헌문란 목적’을 인정하기 어려워지자 1심 판결은 일반적인 채증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비화폰 통화내역과 이 사건 재판 증거조사에서 거짓이 명백히 드러난 홍장원, 곽종근 등의 체포 지시, 의원 끌어내기 지시도 모조리 인정하였다. 결국, 내란죄 유죄의 구조가 비현실적이기에 사실인정을 끼워맞출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심 판결은 계엄 선포가 군과 경찰을 투입하여 국회를 봉쇄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면서,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에 대한 체포 계획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 역시 상당기간의 국회 무력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판시하였다. 하지만 계엄 합동수사본부 조직도 구성되지 않고 수사도 시작되지 않아 혐의사실도, 증거도 없으며 체포나 체포시도조차 있을 수 없음을 간과하고 있다.

(15) 1심 판결은 계엄 선포의 또 하나의 이유로, 국회의 정치활동 금지라는 위헌적 포고령을 공고하여 국회의원 수 명을 포고령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 구금함으로써 국회 무력화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포고령이란 것은 계엄법의 ‘하위 규범’으로서 계엄법상 국회의원의 계엄해제 요구안 심의와 입법예산 등 권능은 제약할 수 없으므로, 그 범위에서 국회의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포고령은 금지사항을 위반하면 체포하고 처벌한다는 것인데 만일 국회의원을 포고령 위반으로 체포하였다면 법원에서 영장이 100% 기각될 것이고 국회의 석방요구 결의에 따라 석방시킬 수 밖에 없다. 이를 거부하고 불법적인 구금을 지속하려면 막강한 군사적 힘과 압도적 무력에 의한 국가 장악 계획과 실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이 없었음은 1심 판결이 인정하는 바이며, 포고령 위반 현행범을 체포·구금함으로써 국회 무력화를 실행한 바도 없다.

1심 판결은 이른바 ‘최상목 메모’라고 알려진 ‘국가비상 입법기구 예산확보’에 관해서도 이것이 1980년도 신군부가 국회를 무력화하고 해산할 무렵 대체 입법기구로 만든 ‘국가보위 입법회의’와 같은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이를 만든 김용현 장관의 "이 메모는 대통령의 비상입법인 긴급재정경제명령 관련 협조 문건"이라는 주장 역시 배척했다. 그런데 이 메모의 1항은 예비비 마련, 2항은 국회 관련 보조금과 지원금, 3항은 긴급명령 등의 국가비상 입법에 관한 것이어서 1~3항 내용은 결국 ‘국회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메모로부터 국회의 해산 내지 무력화를 도출하는 것은 상식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국가비상 입법기구의 조직, 권한, 구성에 관한 일체의 언급이 없기에 예산의 도출도 불가능한 아이디어 차원의 문건임을 알 수 있다. 1심 법원의 판시대로 해석하더라도 결국 국회 해산 내지 무력화를 위한 정치·군사계획이 전제되어야 함은 마찬가지다.

(16) 아울러 1심 판결은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문에서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척결’하겠다고 했으니 상당기간 국회 권능을 무력화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p. 1038)하였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하면 국헌문란이 되는 것인가? ‘척결’은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고 대국민 담화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수호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의 핵심은 법치의 수호와 사법의 독립인데, 어떻게 반국가세력 척결이 국헌문란의 목적과 연결되는지 의문이다. 1심 판결은 문언의 의미를 넘을 뿐 아니라 거대 야당이 반국가세력 등과 연계하여 헌정을 파괴하고 국정을 마비시켜 나라가 망국적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주권자인 국민에게 알리고 국정마비를 회복해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계엄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 부정한 것이다.

비상사태 선포는, 반드시 전시나 사변에만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실체적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국가비상사태’의 실체적 요건에는 i) 헌정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0차례의 정부각료 탄핵으로 인한 국정마비와 ii) 거대야당의 국회독재 입법폭거·예산폭거가 해당된다. 현대적인 전복이나 사회 혼란은 결코 총칼이 아니라 입법 독재 및 각료에 대한 줄탄핵 등을 통해 국정을 마비시키는 (합법을 가장한) 연성 쿠데타(Soft Coup)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가 내부의 반국가활동으로 행정이 마비되면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국가 지도자의 결단이 유일한 정상화의 수단이다. 따라서 이는 헌법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파괴가 아닌 ‘헌정질서 복원을 위한 결단’으로 보아야 한다. 헌법 파괴적 계엄이 아니라 헌법 복원적 계엄인 것이다.

(17) 결국 1심 판결은 윤 대통령이 국회를 상당기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군경을 동원, 국회를 제대로 봉쇄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저질러 내란죄로 감옥가는 길을 선택했다는 비상식적인 말로 귀결된다. 1심의 범죄사실과 판결문은 1천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매우 방대하지만 핵심은 ‘국회 권능의 상당기간 무력화’가 있었는지 여부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 ‘상당기간’ 국회를 봉쇄하고 싶어도 국민저항, 사회 제세력의 반발, 사법의 개입, 언론과 여론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여 군경부터 대통령의 봉쇄 유지 지시를 이행하지 못할 것임은 응당 추측할 수 있고, 봉쇄에 필요한 정치·군사 계획을 가지고 실행하지 않는 한 ‘상당기간 무력화’는 불가능하므로 이 사건 대통령의 내란은 성립되지 아니한다고 보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다.

12, 3 비상계엄은 이후 신속하게 계엄해제 요구가 국회에서 나올 것을 예상했고, 따라서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 계엄, 평화 계엄, 소수 병력, 부사관 체제, 실탄 개인소지 금지 등 군의 임무를 질서유지로 제한하였다. 하지만 각 예하 사령부와 부대는 계엄과 비상상황 대처 매뉴얼과 자체 판단에 따른 계엄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계엄 임무를 수행한 것은 전면적인 ‘봉쇄’ 의도가 아니라 ‘질서유지’를 위한 통제였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1심 판결은 반대세력을 누르고 권력 독점과 장기집권을 하려 했다는 특검의 ‘친위쿠데타’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검사는 피고인이 약 1년 전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국회를 제압하여 이른바 장기독재를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 비상계엄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나 이를 인정할 증거는 부족", p. 752). 그럼에도 군경이 국회 건물에 출동했다는 것만으로 ‘상당기간’ 국회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국헌문란 목적이 인정된다 판시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모순된 판결을 상식적인 관점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또한 이 판결은 생방송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에 투입된 소수 병력으로 수천 명의 국회 관계자를 봉쇄할 수 있다고 하며, 가능하지도 않고 뒷감당도 안되는 의원 끌어내기 지시를 인정했으니, 결국 내란죄의 국헌문란 목적도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판단해 수많은 공직자들에게 생사람 잡는 중형 선고를 한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대통령 변호인단은 검찰과 특검의 내란몰이가 망상과 소설이라고 하였는데, 판결 역시 똑같이 비이성적, 비논리적, 비상식적인 창작 소설에 다름 아니다.

(18)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i) 국회해산이나 무력화를 통한 초법적 개헌 추진 계획도 일체 없고, ii) 이를 가능하게 할 대규모 군 투입에 의한 국가 장악 계획도 없으며, iii) 국내 모든 수사기관이 달라붙어 1년 이상 수사를 해서 장기독재를 위한 개헌을 목표로 정치·군사 계획을 세워 추진하려 한 것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내란은 무죄라고 강력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12. 3 비상계엄으로 1회적인 의결 방해가 될 수는 있어도 상당기간 봉쇄 유지와 국회 권능 무력화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1심 판시는 1회적인 방해라면 국헌문란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내란죄는 무죄가 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물론 1심은 국회 봉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윤 대통령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상당기간 봉쇄하려 했다고 내란죄를 인정했지만 말이다. 정적 제거를 통해 독재의 명분을 쌓은 궁예의 관심법이 오늘날 대한민국 법원에 살아나 정권에 부역하고 있다.

국민들이 재판 중계를 통해 직접 본 곽종근, 홍장원 등의 허위 증언도 모두 채택한 판결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러한 부당한 증거채택과 사실인정에 대해는 항소심에서 계속 다퉈나갈 것이다. 비상계엄 관련 1심의 모든 판결이 짜맞추어진 듯 형량이 선고되고, 사법부의 독립은 법원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이처럼 법치가 무너지는 가운데 법왜곡죄에 이어 4심제마저 통과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12. 3 비상계엄이 옳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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